행정안전부의 2024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약 5200만 명이다. 그중 약 50%가 수도권에 거주한다. 인구와 산업, 인프라가 모두 수도권으로 집중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고 있지만 지역 사회의 일자리와 인프라가 함께 늘어나야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의 경직된 규제 방식은 지역 사회가 스스로 성장할 기반을 약화시킨다. 다음 세 가지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 첫째, 30년 업력의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 제조 지역기업 A사
A사는 순환골재를 활용한 친환경 제품 '순환아스콘'을 생산하려고 건조시설을 추가하려 했다. 정부의 자원재활용 정책에도 맞는 방향이다. 그런데 관할 지자체는 도시계획 조례의 '기존 대기오염물질 배출시설의 증설 불가' 규정을 이유로 변경 허가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회사는 친환경 전환과 국가 정책에 따른 시장 수요 대응 등에 모두 막히며 존폐 위기에 놓였다.
◇ 둘째, 슬러지를 재활용해 유기질 비료를 생산하는 지역기업 B사
B사는 지자체로부터 폐쇄명령을 받았다. 지자체는 산업단지 관리기본계획을 근거로 들었다. '대기환경보전법령상 설치허가가 필요한 수준의 특정대기유해물질이 배출되면 입주를 제한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인근 산업단지의 관리기본계획은 설치 허가 기준보다 완화된 배출 허용 기준을 충족하면 입주를 허용하고 있다. 같은 지자체 안 유사 업종 산업단지인데도 기준 적용이 제각각이라 규제의 일관성이 무너지는 구조다.
◇ 셋째, 풍력발전시설 설치를 위해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한 지역기업 C사
풍력발전시설 설치를 위해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한 C사의 경우, 신청 이후 지자체가 풍력발전시설의 이격거리 입지 제한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했다. 그런데 경과규정이 불명확해 허가 여부가 장기간 유보된 상태다.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국가 흐름과도 어긋난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지자체가 스스로 마련한 규제의 목적과 철학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문언에만 매달리는 형식적 집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 회사의 사업 전환과 투자 계획에 불확실성을 키운다. 결국 영업 활동이 위축되고 일자리, 인프라, 에너지 전환 같은 지역 사회의 핵심 과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문제는 경직된 문구 중심 행정에서 비롯된다. 규제를 어떤 사회적 필요에 따라 도입했는지, 지역의 산업 구조와 환경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규정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으면 지역 경제의 활력은 떨어진다. 국가 정책 방향도 현장에서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는 결국 국가 균형 발전에도 구조적 제약을 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자체는 규제를 집행할 때 해당 규제가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유연한 해석과 재량을 적극 행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중앙행정기관과 협의해 규제 취지와 지역 현실이 조화를 이루는 운용 방식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명확한 방향을 잃은 규제가 계속되는 한, 산업 현장은 오늘도 표류할 수밖에 없다.
